한국 드라마를 보다 보면, 진지한 장면과 감정적인 흐름 한가운데에서도 어김없이 등장하는 '코믹한 장면'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때로는 만화에서 튀어나온 듯한 연출, 과장된 음향 효과나 표정, 인물들의 어설픈 실수 장면이 불쑥 들어오죠. 시청자는 갑자기 터지는 이 유머 코드에 웃으며 그 장면을 즐기게 되지만, 사실 이 장치는 단순한 재미를 위한 것이 아닙니다. 최근에는 ‘열혈사제’, ‘힘쎈여자 도봉순’, ‘오 나의 귀신님’과 같은 흥행작들이 코믹씬을 전략적으로 활용하며 큰 호응을 얻었고, 현재 방영 중인 ‘이강에는 달이 흐른다’ 역시 영혼 체인지라는 설정을 중심으로 유쾌한 상황극을 자연스럽게 녹여내고 있습니다. 이처럼 요즘 드라마는 왜 자꾸 웃기려고 하는 걸까요? 그 이면에는 ‘계산된 연출’이라는 키워드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긴장과 몰입 사이, 코믹한 장면은 감정 조절 장치
드라마의 주요 구조는 갈등, 위기, 감정의 고조를 중심으로 전개됩니다. 그런데 시청자가 너무 오랫동안 긴장 상태에 놓이게 되면 피로감을 느끼기 마련입니다. 이럴 때 중간중간 코믹한 장면이 등장하면 감정이 환기되고, 극의 흐름에 다시 몰입할 수 있는 여유가 생깁니다. 대표적으로 ‘열혈사제’에서는 무거운 사회 문제를 다루면서도 주인공이 보여주는 과장된 행동과 황당한 상황이 적절하게 배치돼, 이야기의 무게감을 덜어주는 역할을 했습니다. 특히 김남길 배우가 실제 인터뷰에서 “이 드라마는 만화에 가깝다”고 언급했을 만큼, 연출 자체에 과장과 유머가 의도적으로 녹아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코믹한 장면은 단순한 웃음 포인트가 아니라, 감정의 흐름을 끊지 않으면서도 시청자가 다시 극에 몰입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매우 중요한 요소입니다. 시청자 입장에서도 울고 웃는 감정 곡선을 자연스럽게 따라갈 수 있는 장치이기 때문에, 반복적으로 활용되는 것이죠.
요즘 드라마가 웃기려는 이유는 캐릭터 호감도 때문
시청자들이 한 작품에 몰입하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캐릭터’입니다. 단순히 멋지고 예쁜 외모를 가진 인물보다, 현실에서 만날 법한 인물처럼 다가오는 캐릭터에 더 애착을 느끼기 마련인데요. 이때 '코믹한 장면'은 캐릭터의 인간적인 면모를 보여주는 데 매우 효과적인 장치가 됩니다. ‘힘쎈여자 도봉순’의 주인공 도봉순은 타고난 괴력을 지닌 인물이지만, 일상에서는 실수도 많고 귀여운 모습이 많습니다. 이처럼 강한 능력과 유쾌한 면모가 함께 있을 때, 캐릭터는 더욱 입체적으로 다가옵니다. 코믹한 상황 속에서 보여지는 허술함, 당황한 표정, 현실적인 반응은 시청자들이 공감하고 웃으며 캐릭터에 가까워지도록 돕습니다. 웃긴 장면은 단순히 극의 분위기를 전환시키는 역할을 넘어서, 시청자가 등장인물에게 정서적으로 연결될 수 있도록 해주는 다리 역할을 하는 것이죠. 이러한 연출은 시청자 충성도와 직결되기 때문에, 드라마 작가와 연출진 입장에서는 반드시 고려하게 되는 요소입니다.
판타지 설정일수록 웃음을 끌어들인다
최근의 많은 드라마는 영혼 체인지, 타임슬립, 빙의, 초능력 등 비현실적인 소재를 전면에 내세우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설정은 자칫하면 이질감이나 어색함을 줄 수 있기에, 시청자의 몰입을 돕기 위해선 이를 보완할 장치가 필요합니다. 바로 그때 등장하는 것이 ‘코믹한 연출’입니다. 예를 들어 ‘이강에는 달이 흐른다’에서는 남녀 주인공의 영혼이 바뀌는 설정을 통해 예상치 못한 상황들이 벌어지는데, 이때 주인공들이 서로의 성별이나 행동 방식에 적응하지 못해 벌이는 엉뚱한 장면들이 반복적으로 등장합니다. 이런 코믹한 요소는 시청자에게 "이건 너무 진지하게 보지 않아도 되는 이야기야"라고 말해주는 역할을 하며, 오히려 극 전체를 더욱 부드럽고 자연스럽게 몰입할 수 있도록 만들어줍니다. 결국 판타지 요소는 코믹한 연출을 통해 현실성과의 간극을 줄이고, 시청자가 무리 없이 이야기 세계에 들어올 수 있도록 안내하는 전략이 되는 셈입니다. 그래서 비현실적인 설정일수록 오히려 코믹한 연출이 자주 등장하고, 그것이 오히려 극의 신뢰도를 높이는 경우도 많습니다.
참고문헌
- 김경희, 2020. 「한국 드라마에서 유머의 기능: 감정 조절과 몰입도의 상관성」, 한국영상학회논문집
- 이정훈, 2021. 「장르 혼성 드라마의 전략적 서사 구조」, 방송문화연구
- 중앙일보. 2019. 「김남길 ‘열혈사제는 만화다’」, https://www.joongang.co.kr/article/23437385
- 씨네21. 2024. 「‘이강에는 달이 흐른다’ 리뷰: 가벼운 판타지의 힘」
- 이현정, 2022. 『K-드라마의 이해』, 커뮤니케이션북스